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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자기혐오와 자기애를 중점으로




Ⅰ. 서론


알렌과 라비는 겉보기엔 친밀하고 사이좋아서 쿵짝이 매우 잘 맞아보이지만 실상 두 사람의 삶의 성향은 전혀 상이하다고 할 수 있음. 작중 내내 알렌은 자기희생을 위시한 강박적인 박애정신을 드러내는 반면 라비는 그에 비해 이해적이고 현실적이며 방관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줌. 이 차이는 멀리 나가면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 ‘진보적인 파괴와 보수적인 유지’, ‘공격성과 방어성’ 등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나 이 글에선 가장 본원적인 것에 대해 다루려고 함. 바로 자기애와 자존감임.




Ⅱ. 본론


1) 희생은 자기애의 결여로부터

알렌의 능력치 파라미터는 회색의 성궤 기준 구제성향이 5이고 인정이 3임. 알렌처럼 이타적이고 박애적인 캐릭터가 인정이 고작 3인 이유는 바로 알렌의 희생이 완전히 인류애정신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절반쯤은 자기애의 결여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


알렌의 사고회로는 누군가 눈앞에서 죽는다->그를 구제하지 못한 자신에게 분노한다의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음. 즉 자기혐오로 귀결된다는 것임. 알렌이 타인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며 희생하고 구른다는 건 결국 그만큼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 자기 자신을 아끼지 않기에 몸을 훅훅 던질 수 있는 것임.



▲ 악마가 자폭하려고 하자 뛰어들려고 했던 알렌. 리나리가 막아서서 살았음.


이런 알렌의 희생 방식은 때론 일방향적이거나 맹목적으로 나타나기도 함. 가장 대표적인 예로 수만편을 들 수 있음. 수만은 교단을 배신하고 동료들을 팔아넘긴 상태였으며 신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고, 살아난다고 해도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 채 속죄는, 다시 말해 행복하다곤 할 수 없을 삶을 살아야 할 운명이었을 것임. 그런데도 그런 수만을 살리기 위해서 알렌은 자신의 왼팔을 내어줬음.. 나는 이 에피가 정말 심적으로 힘든데, 수만도 알렌도 모두 이해가면서도 둘의 선택을 전적으로 말리고 싶기 때문임.


알렌의 희생과 박애는 어딘가 강박적이며 다소 결핍되어 있음. 라비는 12권에서 알렌더러 ‘너무 빛나서 사라질 것 같다’고 표현한 바 있는데, 이는 알렌이 자신의 몸을 불태우고 희생하여 주위를 밝히는 빛이라고 해석할 수 있음. 요컨대 촛불이 다 녹아서 소멸하기 직전에 가장 활활 타오르듯이, 알렌 역시 남들이 보기엔 그러한 위태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임.


보통 결핍이란 어떤 집착을 야기하기도 함. 알렌의 경우는 그 집착이 마나라는 존재에게 향하고 있음. 마나가 자신을 구원해주었듯이 자기도 남을 구하고 싶어 하고 마나가 자신을 사랑해주었듯이 자기도 남을 사랑하고 싶어 함. 너무 강박적인 나머지 약간 삐뚤어져 있지만 지향점은 분명 그러함. 알렌의 모든 역점에는 마나가 있음. 알렌의 캐릭터성은 마나가 있기에 완성되는 것임. 물론 이건 ‘여태까지의 알렌’의 이야기이고, 앞으로는 더 많은 동료들이 알렌을 이루게 될 거임. 마나는 알렌의 근간을 이루는 소중하고 사랑스런 존재인 동시에 알렌이 동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느 정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는 트라우마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 알렌의 과한 희생성향이나 자기혐오 등으로부터의 탈피와 더불어서 말임. 그리고 디그레이맨은 그런 알렌의 성장 이야기가 되어야 함. 


실제로 알렌은 회색의 성궤->회색의 기록으로 넘어오면서 많은 성장을 이룩했는데 그 중 가장 유의미한 것이 인정과 유연성의 상승임. 인정은 3점에서 4.5점이 되었고 융통성은 3점에서 4점이 되었음. 이는 알렌이 강박적인 사랑이 아닌 온전히 남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걸 의미하며 동시에 알렌이 조금 더 어른스럽고 꺾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의미함. 알렌은 몹시 일직선적이고 올곧고 심지 굳은 성격인데 본래 너무 올곧은 것은 언젠가 꺾이고 부러지기 마련임. 그래서 여태까지의 알렌이 아슬아슬해 보였던 거고.... 그치만 유연한 것은 다름. 즉 유연성이 늘어났다는 건 알렌이 더 단단해졌다는 것. 알렌은 곁에 소중한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음.




2) 잃을 것이 많으면 겁이 많아진다

보수란 그런 것이다. 가진 게 많은 자들이 그걸 잃기 두려워하여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 초반부의 알렌은 잃을 것이 전혀 없는 소년이었기 때문에 자기 몸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알렌은 체제붕괴적이며 진보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음. 


반면 라비는 알렌과 정반대의 캐릭터. 일단 라비는 북맨이라는 업과 그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라비는 항상 자신을 소개할 때 북맨주니어라고 말하며 때로는 자랑스럽게 굴기도 함. 또한 북맨의 사명에 대해 갈등하고 회의할지언정 결코 북맨이라는 위치의 긍지를 저버린 적은 없음. 



▲ 라비에게는 북맨 일족의 책임이 있다고 함.


라비는 결국 전쟁에 깊게 관여하면 잃을 것이 많아지는 입장임. 따라서 라비는 필연적으로 체제유지적이며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어짐. 이게 바로 라비가 알렌과 다르게 몸을 사리는 이유. 쓸데없는 위험감수는 하지 않으며 대체적으로 안전한 선택지를 고름. 동시에 라비는 알렌보다 자기애나 자의식, 정체성 따위를 조금 더 확실히 챙기고 있다고 볼 수 있음. 


여기에 라비는 동료들과 거리를 두는 편. 자기가 여태껏 걸어온 삶에 새로운 외부의 것이 침범하는 걸 꺼리기 때문임. 그니까 동료가 자신에게 너무 소중해지면 본래 자신의 삶을 상실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 여기서 알렌과 크나큰 차이점이 하나 생김. 알렌은 작품이 전개되면서 소중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정체성을 새로 정립하게 되지만, 라비는 반대로 소중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걸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며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음. 너무나 강한 사명의식이 오히려 라비를 고립시키고 외부로부터 방어하게 만드는 것.


알렌은 초반부에 비해 유의미하게 정신적 성장을 이뤘는데 라비는 초반부나 지금이나 성장한 면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음. 그래서 둘의 관계는 수만편~방주편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역전하게 되는 것임. 선배와 후배 포지션에서 파괴자와 방관자의 포지션으로. 




3) 아슬아슬한 관계성

알렌과 라비의 관계는 겉으로는 안정되어 있을지 몰라도 사실 이러한 상반된 캐릭터성으로 인해 무척 아슬아슬하며 서로 선을 넘지 않는 듯한 느낌임.



▲ 라비의 꺼림칙한 부분을 인지한 후에도 라비에게 별 다른 질문하지 않는 알렌. 캐릭그레이에서도 안대 밑에 궁금증을 보이긴 했지만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음.


알렌은 라비를 존중하고 있는 한편, 라비의 그런 부분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도 보여짐. 라비의 입장이 어떻든 알렌은 라비를 동료로 생각하고 있고, 그건 혹여 라비가 교단을 배신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임. 아마 라비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아왔으면서도 알렌 같은 타입의 사람은 살면서 처음 봤을 것 같음. 알렌을 과하게 의식한다는 점이 라비가 알렌에게 무른 모습을 보이곤 하는 이유가 될 수 있겠음. 가령 방주에서 탈출할 때 티키를 구하고 오겠다는 알렌을 말리지 않고 그러라고 선뜻 대답한 경우. 라비의 입장에선 알렌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겠지만, 어쨌거나 알렌이 내린 결정을 따라줌.




Ⅲ. 결론


말하자면 알렌은 자기애가 결핍된 타입이고 라비는 자의식이 확실한 타입. 그게 둘의 성향을 정반대로 갈라놓았다고 할 수 있음. 하지만 작품이 전개될수록 알렌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반면 라비는 계속해서 엑소시스트와 북맨의 길에서 흔들리기만 하고 있음. 결국 둘의 상황은 점차 뒤바뀌어가고 있는 셈. 그리고 이러한 포지션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풀려고 함..... 심심해서 쓰기 시작했다가 힘들어서 그냥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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