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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포지션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가









Ⅰ. 서론


지난 1편은 알렌과 라비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이었음. 다시 정리하자면 작품이 전개될수록, 자기혐오에 빠져 자의식이 밑바닥이었던 알렌은 정체성이 확고해지고 반대로 자의식을 확실히 챙기고 있었던 라비는 정체성이 점차 흐릿해져간다는 것. 기실 알렌과 라비는 본질적으론 닮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둘 다 흑과 백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는 (혹은 속하지 않는) 중도적인 캐릭터란 점. 그런 면에서 둘의 성향차이가 이토록 유의미하게 갈라진다는 건 꽤 재밌는 부분임.




Ⅱ. 본론


1) ‘선배와 후배’에서 ‘시간의 파괴자와 역사의 방관자’로 바뀌기까지

라비의 첫 등장은 알렌이 가장 약해졌을 때였음. 왼눈이 다쳐 악마를 식별하지 못하고 몸도 아직 성하지 않을 때. 알렌이 기습을 당하던 순간에 라비는 알렌을 구해주고, 알렌이 지난 날 크로스와의 대화를 다시금 떠올리게 함. 요컨대 라비의 초반부 롤은 선배 엑소시스트로서 알렌을 새로이 각성시키는 거였음.


하지만 만화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 이런 롤은 희미해짐. 그 이유는 알렌이 이미 충분히 교단에 녹아들었기 때문도 있지만, 수만편~방주편 이후 두 사람의 관계성이 역전되었기 때문.


수만편을 필두로 라비는 비극을 방관해야만 한다는 사실로 인해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음. 그리고 이전까지는 크게 티가 나지 않았던 라비의 방관자적 면모가 이때부터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동시에 선배 롤을 상실한 라비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교단을 지켜보고 기록하며 관찰하는 모습으로서 더 자주 묘사됨. 



▲ 북맨의 대사를 통해 독자는 작가가 알렌과 라비에게 부여한 역할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음. 시간의 파괴자, 그리고 역사의 방관자.


이러한 관계성의 역전은 너무나 필연적이다. 라비에게 있어 알렌은 누구보다도 중대한 기록의 대상이므로. 하지만 라비는 이성적인 척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감성에 치우쳐지는 타입이라 그런 알렌에게 자연스럽게 동정 혹은 죄의식이 들었을 것임.


이때 둘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감이다. 둘의 거리가 본격적으로 벌어진 것은 바로 방주편 이후. 방주편 이후 둘의 거리감을 도식화 해보자면 아래와 같음.

 


라비는 맨 뒤에서 걸어야 하는 입장이니만큼 알렌을 계속 면밀히 지켜볼 수 있는 포지션임. 알렌의 나약함과 강함, 14번째의 비밀, 위태로움... 뭐 그런 것들.... 다시 말해 라비는 알렌에 대해 빠삭함. 반면 알렌은 맨 앞에서 걸어야 하는 입장. 즉 라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포지션임. 이런 위치의 변화에서 관계성의 역전이 이루어진 것임.


이 관계에서 아무래도 상대방을 더 의식하고 신경 쓸 쪽은 라비가 될 것이고,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상대방을 위해 제 몸을 헌신할 수 있는 쪽은 알렌이 될 것임.





2) 이상주의를 경외하는 현실주의

누군가를 구하는 파괴자가 되고 싶어하는 알렌. 알렌의 이런 구제성향은 비단 인간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악마에게까지 적용됨. 알렌은 너무나 희생적인 나머지 종종 직관적으로 행동하여 스스로 위험에 빠질 때가 있음. 



▲ 반면 라비는 적과 대치할 때 상대의 레벨을 먼저 가늠하는 타입. 그리고 가장 피해가 적고 이론적인 방식의 싸움을 택함.


이런 측면에서 알렌을 이상주의자, 라비를 현실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임. 둘의 성향 차이는 이토록 극명한데 둘이 그다지 마찰을 빚지 않는 이유는 라비가 알렌에게 쉽게 동화되는, 말하자면 무르거나 져주는 타입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에는 알렌을 향한 라비의 경외심이 바탕됨. 



라비는 알렌을 관찰하면서, 언제나 이상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는 그에게 감탄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임. 따라서 감탄과  경외심은 1) 에서 서술했던 포지션의 변화가 야기한 영향의 일환이 되는 셈임. 


하지만 라비는 알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알렌의 행보에 감탄하되, 결코 알렌의 뒤를 따르고자 하지는 않을 것임. 그건 알렌과 라비가 너무나 다른 사람이면서, 두 사람 다 엄청난 마이페이스기 때문이다. 라비는 현실적이고 겁이 많은 자신으로선 결코 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알렌을 공경하겠으나 그 뿐이다. 알렌이 전쟁 도중에 전사한대도 라비는 묵묵히 제 일(기록)을 할 것임.... 




3) 두 사람이 페이스를 차지하는 법

그렇다면 두 사람의 이러한 마이페이스 기질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알렌과 라비 둘 다 마이페이스라곤 하지만 여기엔 큰 차이점이 한 가지 있음. 알렌은 남의 페이스를 흐트러뜨려 흐름을 자기에게 가져오는 공격적인 타입이고, 라비는 자기의 페이스를 굳건히 유지하려는 방어적인 타입이라는 점. 여기서 알렌의 직관성과 막무가내성, 그리고 라비의 능글거리는 회피성을 설명할 수 있음. 


초반부에는 알렌이 라비의 페이스에 휘말렸던 편임. 라비가 알렌에게 장난을 걸면 주로 알렌이 발끈하는 식. 하지만 작품이 전개되면서(나는 포지션이 변화하면서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만) 라비가 알렌의 페이스에 휘말리기 시작함. 알렌이 먼저 라비에게 장난을 걸고 라비는 그냥 받아주는 입장이 된다. 이렇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에게 어떤 감정 변화가 일어났는가에 대해 생각하는 건 언제나 새롭고 즐거운 일임.




Ⅲ.결론

정리하자면 이번 글은 포지션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또 둘 사이의 관계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얘기한 내용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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