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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라비] 캐치미














아침에 하게 되는 후회라는 건 으레 다 거기서 거기다. 

술, 그리고 하룻밤 실수.



그날의 라비 또한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눈을 뜨자마자 깨질 것 같은 두통을 느꼈고,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제 몸을 확인했으며, 물밀 듯 밀려오는 쪽팔린 기억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소리 없는 비명은 그에 대한 자동 반사였다.



차라리 필름이 끊겼더라면 더 좋았을 터다. 그러나 문제는 후회스런 그 행동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난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밤새 무언가에 찧었을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라비는 당장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내가 어제 대체 왜 그랬지― 의문은 자괴가 되어 자꾸만 그의 양심을 타박했고, 바닥에 널브러진 익숙한 교복셔츠를 본 순간에는 이미 그에게 당장 서랍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죽으라고 외치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다리를 마구 발길질 해 애꿎은 이불을 팡팡 차댔다. 나름대로 조용히 한다고 한 몸부림이었는데, 그것이 제법 소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일어났어요?”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앳된 목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순간, 머리끝에서부터 소름이 쫙 돋았다. 흰 면티에 교복바지 차림을 한 알렌이 문턱에 서 있었다. 아무래도 라비의 것을 빌려 입은 게 틀림없는 상의는 품이 한참 남아 보였다.




“놀랐죠? 방이 지저분해서. 제가 먼저 치웠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아, 우리 집인데… 네가 죄송할 것까지야….”




그 특유의 부드러운 말씨는, 딱 남의 죄책감을 자극할 만큼 예의 발랐던 것이다. 그 반짝반짝한 성실함이 너무도 눈부셔서 라비는 차마 그쪽을 쳐다보지도 못하며 대충 잡히는 옷을 아무거나 집어 입고 거실로 비적비적 나갔다. 감자수프가 끓는 고소한 냄새가 났고 주전자의 증기 새는 소리와 투박한 칼질 소리가 들렸다. 자그마치 4년의 자취 역사동안 라비는 단 한 번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부엌에 누군가가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요리 중인 모습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그 장면이 실로 비현실적이게 느껴져서, 어젯밤의 그 일은 한낱 꿈이 아니었을는지 잠시 기대에 부풀어 보았다.




“몸은 괜찮아요? 어제 많이 힘들어 하던데.”




…물론 기대는 기대일 뿐.



라비는 마음이 불편한 듯이 주방을 서성거렸지만 체력이 영 받쳐주질 않아 오래 서있지는 못했다. 결국 소파 위에 길게 늘어진 그의 앞으로 알렌은 따뜻한 꿀물을 가져다주었다. 화사하게 웃는 얼굴은 어젯밤의 정사가 무색할 정도로 멀쩡해보였으니까 새삼 7년의 나이차를 실감하게 된다. 차마 이런 것까지 받을 순 없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으나 곧 죽을 것 같은 상태였기에 라비는 잠자코 건네받았다. 




“어제는.”




참고 참다 꺼낸 말이 나오자마자 쩍쩍 갈라져 있어서 라비는 헛기침을 잘게 했다. 목이 잠긴 수준이 아니라 아예 맛이 가서 쉬어 있었다. 아마 원인은 어젯밤…. 아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떨쳐버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제는.




“미안했어.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약간 추태를.”


“…술을 많이 마신 게 미안하단 거예요?”


“어? 아, 아니.”


“그럼 뭐가 미안한데요.”




들리는 목소리는 몹시 평온한데, 말의 내용에 가시가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그러나 라비는 알렌이 그러는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기야, 그건 비단 지금뿐 아니라 매 때에 그러했다. 그저 알렌의 모든 행동을 어린애의 어리광으로밖엔 보지 않았으니까. 알렌은 흘끔 그의 멍청한 얼굴을 쳐다보았다가 한숨을 작게 푹 쉬었다. 그리고 곧장 알렌의 속공이 이어졌다. 내뱉는 족족 스트라이크로, 그냥 라비는 넋 나간 사람처럼 입을 헤벌릴 뿐이었다.




“술에 잔뜩 취해서 전화 건 거? 아니면 집 가는 길을 까먹었다고 데리러 나오라고 한 거? 새벽에 고주망태 된 주정꾼 들쳐 업고 걸어오게 한 거 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만 가겠다는 사람 붙잡고 떡치게 만든 거요?”


“…….”




아, 아, 알렌, 거기… 으응, 너무 깊어…



턱턱 하고 살이 부딪히는 소리, 액체가 질척질척하게 고이고, 열이 오를 대로 올라 그곳을 바싹 세우면 그에 호응하듯 삽입되던 알렌의 물건은 한층 부피를 키웠다. 성급하게 차올리는 풋된 움직임이 귀여워서 팔을 잡아끌고 리드하다가 종내에는 체력이 방전된 몸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마른 신음만 내질렀다.



한창 때인 고등학생의 성욕이란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더라. 라비는 그날 몸소 경험했다. 세 번째 연속된 사정 끝에 이제 그만하자고 하는 말에도 알렌은 아랑곳 않고 그대로 뒤집어서 다시 삽입했다. 등을 보이고 엉덩이를 세운 자세는 더 깊숙이 들어가서 이전까지 닿지 못했던 부위까지 자극하게 된다. 그만, 그, 만, 아아, 앗, 좋아, 좋아아… 하며 꽈악 쥐던 침대 시트의 재질마저 생생히 기억났다.



거기까지 떠올린 라비는 그냥 딱 죽고 싶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머리통을 확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눈앞에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순간 새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얼어붙어 침묵하면 알렌의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잠잠한 집에 울려 퍼졌다. 알렌은 적당히 구운 바게트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크림치즈를 듬뿍 바르고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씹고 있으려니 목이 마른 듯싶어 아까 끓인 물로 우려낸 얼그레이 티를 잔에 따른다. 무심코 바라본 라비는 연상의 것치고는 한참 한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살짝 벌린 입과 맥없이 풀린 동공. 피식한 것은 별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그게 웃겨서였다.




“수프, 다 식겠어요.”




라비 몫의 수프를 담아 내밀면서 알렌은 속으로 생각했다. 바보 같은 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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