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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라비] Trick or Favor 라비가 맨 처음 알렌에게 가졌던 선입견에 견주어 볼 때 가장 의외인 점은 바로 그가 생각만큼 썩 순진하지는 않더라는 것이었다. 앳된 얼굴과 공손한 말씨, 어리숙할 정도로 무른 성격이라든지. 또 놀리면 즉각 반응하는 모습이 재밌었으니까 그게 못내 치기 어린 애송이로만 보였던 것 같다. 뭐, 어디까지나 첫인상에 대한 얘기다. 이후 함께 다니면서 깨달은 것인데 알렌은 확실히 다정했지만 아둔하게 굴지는 않았고 오히려 다소 음험했으며 나이에 비해 조숙했다. 물론, 여러 가지 방면에서. 라비가 가장 최근 그 사실을 재인식하게 된 건 두 사람이 임무를 함께했던 보름 전이었다. 그들이 파견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은 투우와 플라멩코의 기원지였고 시기적절하게도 그때가 하필 축제기간이었던 것이다. 관광객 인파에 휩쓸려 길..
알렌라비 떡책 또 읽어봤음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알렌라비] 해의 그림자 3 11.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비교적 나아진 것은 없었다. 학교생활도, 주위의 시선도, 그리고 라비와의 관계도. 원래부터 빈말로라도 썩 친밀하다곤 말 못 할 두 사람이었다. 타인의 약점을 곧잘 간파하는 라비와 쉽게 도발에 넘어가는 알렌은 그다지 궁합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요사이 그 아슬아슬함으로부터 무언가 터진 것 같았다. 하인들은 자세한 사정을 알지는 못했지만 적잖이 걱정스러웠다. 눈에 띄게 냉랭해진 분위기. 라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는데 문제는 알렌이었다. 가급적 라비와 마주치는 것을 피했고 거북해했으며 조금이라도 화제를 꺼낼라치면 험악해졌다. 그 인간에 대해서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딱 잡아떼니 더 이상 추궁할 수도 없어서 하인들은 결국 조르르 라비에게 토로하기 시작했다. 입을 모아..
ㅇㄹㄼ ㅇㅎㄱ ㅂㄳㄷ2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알렌라비] 해의 그림자 2 6. 미사는 내내 지루했다. 두 손을 모으고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는 자들 사이에서 알렌은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여기 있으면 멀쩡하던 사람도 금방 무언가에 홀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적응되지 않는 엄숙한 공기에 괜히 여러 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이 지긋한 신부가 연신 강요하는 믿음이니 은총이니 하는 것엔 영 관심 없었고,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라비에게 안타깝지만 당신의 전도는 실패였노라고 말해줄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라비가 성경 강독을 위해 단상 앞에 서자 알렌은 그러한 의욕을 상실하고 멍해졌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진중한 자태로 전하는 신의 전언들. 라비의 목소리는 일관된 높낮이였으며 듣기에 거슬림이 없었다. 그건 정말 나무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