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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라비] 턴어라운드 2 운명적으로 만나 첫눈에 반해 사귀었고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멋진 연애를 했으며 권태기가 찾아왔을 땐 쿨하게 서로를 놓아주었다.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헤어진 연인 사이. 그래, 맞는 말이다. 그러나 라비와의 관계를 단순히 그렇게 일단락하기에는 조금 더 복잡하고 예민한 사정이 연루되어 있었다. 적어도 알렌에겐 그랬다. 라비의 첫 베스트셀러와 알렌이 즐겨 연주하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8번, 오후 두시 경의 베르가모트 향기, 그리고 마나의 죽음. 그 모든 것들이 라비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알렌을 괴롭게 했다. 당시 그는 몹시 나약해져있었고 피아노 건반 위에 손가락조차 대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만성우울증에 시달렸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남을 사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 ..
[알렌라비] 턴어라운드 1 여행한다고 생각해. 지금 하는 일은 전부 내려놓고. 알렌은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 없지? 그렇게 말하는 리나리의 목소리가 상기되어 있었다. 워낙 다정한 사람이니까 줄곧 걱정하고 있었던 거겠지. 알렌은 미안함과 고마움의 인사를 따로 전하는 대신 그냥 가볍게 웃었다. 유명 항공사의 비즈니스석을 예매하겠다는 리나리를 만류하고 선편을 고른 그는 여행 가방을 챙기면서 문득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껏해야 칫솔 세트와 갈아입을 옷 몇 벌, 낡은 작곡노트, 그리고 지갑. 만약 피아노가 가방에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면 챙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정도면 일 중독이야, 하고 리나리가 또 잔소리를 할 테지만 그만큼 피아노는 알렌의 전부였다. 프랑스로 가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번에 사운드트랙 작곡을..
생일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빚을 지며 살아왔다. 중학교때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고 고등학교때는 좋은 언니오빠를 만났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좋은 선배후배동기들을 만났음. 물론 지금도 그 사람들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는건 아니다. 꼭 연락할게요 라고 말했지만 살다보니 멀어졌다. 하지만 지금 멀어졌다고 해서 과거에 그 사람들이 내게 끼친 영향까지 무의미하진 않다 그 추억으로 인해서 지금의 나를 형성할 수 있었던거라고 생각한다.. 사람 만나는 거 싫다곤 했지만 역시 그렇게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건 즐거운 거 같다.... 나는 별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떠올려보면 매해 생일마다 매번 다른 사람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줬고 함께해줬다 그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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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라비] 비밀과 거짓말 1. “글은 이제 쓰지 않는 건가요?” 물음은 단도직입적이었고 목소리는 완고했다. 눈빛은 직관적이었으며 금방이라도 꿰뚫을 것처럼 강렬했다. 그때 라비는 그것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압도적인 존재감인가에 대해 말없이 감탄하고 있었다. 단지 등장만으로 클럽 안의 들뜬 공기가 차분해지고 모든 이목을 그 자신에게 집중시킨 것이다. 물론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복장 탓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알렌 워커라는 사람이 가진 걸출함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재능이었으니. 라비의 외조부이자 선대 북맨의 말을 빌리자면 그 재능은 그를 더 난사람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는 비교적 최근에야 깨달았다. 아무리 성가시게 굴어도 도저히 미워할 수 없다는 건, 그만큼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제 편으로 만들..